첫눈을 맞으며
12월 16일 목요일. 오후 4시 30분 갑자기 습설이 펑펑 내렸다. 맑은 날씨에 불현듯 방문한 첫눈이었다.
올해인 2021년, 내리는 눈을 만나기도 처음은 아니다. 내가 기록하지 못해서 정확한 날짜는 아니지만 분명히 1월과 2월 중에도 눈은 내렸을 것이다. 많아도 눈은 눈이고 적어도 눈은 눈이다. 그런데 해가 지나갈 즈음에 내린 눈을 보면서 왜 첫눈이라고 했을까. 길고 긴 땡볕을 견디다가 반갑고 생경스러운 눈이라, 아마도 그냥 생각이 나지 않다가 갑자기 만나서 첫눈이라고 했음직스럽다. 견우직녀가 헤어질 때 안타까운 장면을 떠올리다가 내리는 눈을 첫눈이라고 불렀을까.
나에게도 정말 첫눈이었을까?
내 책 중에 『24절기 이야기』 속에는 첫눈이 오는 날을 지칭하거나 지난 세월을 더듬어 눈이 왔던 날짜를 적지는 못했다. 일반적인 기온과 계절에 따라 벌어지는 농사일, 먹을 음식, 단풍드는 날도 지난 30년 통계까지 살펴보았음에도, 내리는 첫눈에 대한 내용을 간과한 후회가 든다. 아쉽고 안타까운 감정이 오른다.
나에게 첫눈은 어떤 눈이란 말인가.
다른 사람들은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는 약속을 했단다. 어쩌면 단골손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불러내는 상술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의 단골손님을 빼앗아 먹으려고 만든 역상술이었지도 모른다. 불현듯 생각이 나는 사람, 몽매에 그리던 사람, 막연하지만 죽기 전에 만나보자는 사람은 그랬을 것이다.
술잔을 들다 말고 뛰어나가는 사람, 고주망태가 되어서도 나타나는 사람. 그들이 술 마시기 취미활동 중에, 나는 차를 끌고 왔을 뿐이고 나는 차를 갖고 왔을 뿐이라는 사람도 첫눈의 약속은 지켰을 것이다. 나도 그 부류에 드는지는 모르겠다. 그에게 내린 첫눈은 문학인에게 안겨주는 희망이요 꿈이다. 그러나 오후 11시 30분에 내리는 첫눈이라면 어떻게 알기는 했을까? 어떻게 약속을 지켜냈을까? 그저 어제 온 첫눈이 아니라 오늘 내린 첫눈이라고 우겨도 만사형통 해결할까?
언제 어디서 보아도, 언제 어디서 안 보아도, 나도 모르게 내리는 첫눈도 첫눈이 분명하다. 내가 약속을 정하지 못해서 나를 모르는 사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나를 생각해보고 싶지도 않은 사람, 나를 따지지 않을 사람, 나를 떠올려 불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 나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나를 불러내지 않아도 같이할 사람, 모두 손가락 하나로 지칭하며 세 치 혀 안에 싸인 측근이다. 동명이인도 없이 다 같은 사람이다. 그는 분명히 바로 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 틀림없이 나다.
그럼, 나는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고 나와 약속을 하지 않았을까?
약속을 하지 않았더면 그만이지만, 약속을 했어도 소리내어 전달하지 않았거나 편지를 전해주지 않아서 기억이 없을까. 정말 첫눈에 대한 약속은 기억이 없다. 그러나 지금 눈 감고 뒤집어보면 먼 옛날에 꿈꾸던 희망은 있다. 엄연한 사실이면서 분명 싫어도 좋아도 상관없이 기다리는 희망은 있었다.
지금도 내년 첫눈에 대한 약속을 걸기도 않지만, 최소한 5년 아니 10년 후 첫눈에 대한 희망은 있다. 다시 만나고 싶으면서 편지를 띄우지 않아도 유효한 장대한 꿈이다. 나에게 첫눈은 손톱에 물들이면서 약속하는 연애편지용 약속과는 엄연 다르다.
첫눈을 밟으면서 생각나는 단어가 바로 연애편지를 받을 사람을 기다리는 감정, 나도 벅찬 감정이 일었다. 그러나 내가 올해 밟은 감정은 동일하지만 물질적인 그런 눈이 아니란 주장이다. 외면 눈은 뽀드득 소리를 내지만, 내면 감정은 보이지 않고 감싸 쥐어도 잡히지 않는다.
작년에 경자년이라더니 올해는 신축년이었단다. 나는 첫눈이 맞아줄 작품 활동을 할 만큼은 했을까? 첫눈이 내리기 전에 갚아야 할 빚을 다소라도 감당했을까? 첫눈이 내리기 전에 받아야 할 빚을 다소라도 회수했을까? 후회스러운 상황을 떳떳이 해결했을까? 억만 겁으로 엮인 사람을 잊지 않고 찾아보았는가? 남아일언 중천금이라던데 내가 한 약속을 잘 지켰는가?
이런저런 핑계를 들러 붙이고 나몰라할 수도 있겠다. 사람 사는 것이 당장 닥칠 앞도 모르는 사람 일이라서 말이다. 혼자 정하는 약속은 미루기 일쑤라서 약속을 정하기도 어렵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약속이었겠지만, 나는 첫눈에 대한 약속은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고 위안을 해보자.
아무리 하늘이 무너져도 분명한 약속 하나씩은 있다. 최소한 나와 내 마음의 타협에 따라 내리는 약속 말이다. 올해 내가 정한 무언의 약속은 ‘첫눈이 내려도 나는 살고 싶다!’ 이런 단어였다. 다시 말하자면 첫눈을 보고 싶다는, 최소한 내년의 첫눈 아니 5년 후에도 내릴 첫눈, 10년 후에 내릴 첫눈을 만나고 싶다는 약속을 벌써 내렸다는 말이다.
감히 하늘을 두고 약속을 했다니 어불성설이다. 그저 희망 사항임이 분명하다. 내가 정한 약속은 ‘20년은 더 살고 싶다!’는 약속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약속을 떠나 신께 빌고 빈 일방적인 약속이었다. 그것도 최소한 20년이었으니, 의학이 발달한 것과 사회복지 환경이 좋아진 것을 버무러 보면 대체로 25년 혹 30년 후에 내릴 눈을 만나보고 싶다는 해석이 된다.
감성적인 사람, 문학성이 풍부한 사람, 하늘에 구멍이 나서 하염없이 내리는 눈 속에서도 나타나는 사람, 젊은 청춘을 만끽하는 사람, 인정이 두터운 사람, 재정이 부드러운 사람들은 당장 내릴 첫눈 즉 1년 후에 내릴 눈을 만나보고 싶다는 약속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다소 미흡하더라도 덮어주고 안아주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매듭짓는다. 간혹 졸업 20년 후에 내리는 첫눈을 지적하는 대신 날짜를 미리 정해 만나자는 약속도 있었다. 대체로 ‘졸업 20주년 기념’이 바로 단골이다. 그런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정한 약속이 아니라 다수 불특정 약속이라서 호불호를 섞여 놓인 슬픈 약속으로 귀결지어진다.
내가 20년 후를 기대하면서 한 약속은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요구사항이었다. 신께서 사람의 희망 사항을 모두 들어주시는 법은 없다. 그래서 눈치코치를 봐가면서 어느 정도 골라 떼를 써야만 된다. 당장 닥친 올해 첫눈을 본 것에 감사하고, 내년 첫눈에 대한 기대를 부풀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그렇게 엉거주춤하는 기대가 아니라 20년 장구 계획을 세워, 내일은 어떻고 후년은 어떻고 내후년은 이렇게 그후년은 이렇게… 올해 열심히 살아왔으니 내년은 올해 산 보상으로 살려주기를 떼 써야 될성싶다.
첫눈은 아름다운 눈이다. 폭설과 한설이라도 첫눈에 대한 감정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드러운 감정이다. 누구든지 첫눈에 대한 선입견에 둘러싸인 글쟁이는 오늘 늦게 내린 첫눈이 내일 내려도 첫눈이다. 글을 쓰기 전에 놓친 글감 죄책감을 희석해버리는 포장지 삼아 기다린다. 첫눈에 만나기로 되어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눈이 내린 것은 벌써 지난 어제인데 오늘 생각난 약속을 어떻게 해결할까? 아름다운 무지개는 누가 보아도 무지개이다. 그러나 역경을 뚫고 만나는 신기루가 희망과 기대를 짓밟아버리는 신기루로 끝나지 말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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