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561

대리 설거지

대리 설거지 예전에는 찬물로 설거지를 했다. 지금은 지난 얘기다. 어머니도 찬물 설거지를 하셨고, 찬물 빨래도 하셨다. 개울에 나가서 하시지는 않았지만 그것으로도 만족하는 삶이었다. 민속화나 풍속화에서 만나는 정도로 변했다. 감사한 세상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찬물 설거지를 체험하다니 웬 말인가! 나는 어머니의 실세를 다 읽지 못해서 후회하다가 반성하고 통곡했다. 즐거운 명절에 만나는 사람들이 즐겁다며 반가워한다. 먹는 것도 즐겁고 먹이는 것도 행복이다.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도 만족이고 빼앗아 먹는 것도 만끽이다. 비용이 들어가도 자처한다는 세상살이인데 남는 것이 하나 있다면 무엇일까? 설거지다. 설거지를 시작할 때부터 최종 마무리할 때까지 얼마나 긴 고통의 연속이었을까? 누구는 만들고, 누구는 먹고, ..

달챙이를 보았나?

달챙이를 보았나? 어머니는 보릿고개를 넘으셨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지만 대충은 알만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마당에 티끌이 있다면 저녁밥 먹기 전에 쓸고, 밤새 눈이 쌓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쓰는 것도 거들었다. 식수가 부족하다면 물동이를 지고 오는 것을 도왔다. 아궁이에 짚풀을 여미면 내가 때는 차례라는 것을 알았다. 여름에는 보리를 한소꿈 끓였다가 대 보퉁이에 담아 걸어놓는 것도 알게 됐다. 보리는 처음부터 논스톱으로 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타임을 주고 쌀과 함께 섞어 밥을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이때 쥐와 고양이가 빼앗아 먹어버린 적은 한 번도 기억이 없다. 아마 도둑도 보리밥은 뻣뻣하다며 먹기 싫어했을 것이다. 요즘 별미로 먹는 보리밥도 두 번 재치는 것이 ..

내가 받은 전별금

내가 받은 전별금 살다 이별하고 헤어지는 것이 다반사니 이별의 증거로 잊지 말라며, 어느 정도의 돈을 준다는 말이 있다. 정리(情理)로 정리(整理)하는 이론이 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일견, 목사에게 퇴직금이나 전별금을 주지 않는 경향도 있다. 따진다면 목회자의 본분에 맞는 것 같으나 실상 다른 예가 많다. 떠나는 사람이 받지 않겠다고 공표했단다. 확인해보니 그만큼의 혜택을 모두 받았다는 말도 들린다. 왜 이리 복잡할까? 받을 금액이 많다 보니 세금이 아까워서 그렇단다. 목회자라니 이중적 사상!.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더라면... 나도 이해는 간다. 내가 다녔던 교회 중에서 정년퇴직을 맞아 20억도 넘는 퇴직금이 있었다. 그래도 공식 퇴직금을 받았으니 맞기는 하다. 근무하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출하면 ..

검사동일체의 특혜 맛을 보았니?

검사동일체의 특혜 맛을 보았니? 검사동일체는 검사끼리는 한 몸이라는 말이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부부가 한 몸이라는 것뿐이었는데 나이가 들다보니 검사끼리도 한 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부가 이혼하면 남이 된다던데 검사도 이탈하면 남이 될까? 모르겠다. 그래서 좀 더 알아보니 검사 수장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정의란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전국의 검사들이 검찰권을 행사할 때에 검찰총장을 점정으로 상하 복종 관계에서 하나의 유기적 조직체로서 활동한다는 내용이다. 검찰 사무의 신속성, 통일성, 공정성을 위한 것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관점이 다르거나 수사 포인트가 잘못되었더라도 미루거나 항명하면 안 된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그런데 문제는 검사 혼자만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수사기록을 보면 방..

45년 숨겨온 불효자의 독백

45년 숨겨온 불효자의 독백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녀는 불효자라는 말도 있다. 오래된 유교의 개념에서 시작된 내용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정확히 20년, 나는 불효자의 대열을 벗어나지 못한 채 남았다. ‘오늘은 D-123’ 이라는 단어를 접하니 전염병 코로나19 때문에 2020 도쿄올림픽이 이루어질 것인지 미룰 것인지 혹은 취소될지가 세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에 대해서는 무관심, 막무가내, 기만, 거짓말, 무시, 혐한의 주연 일본, 오늘도 세계인의 경기력을 빌미로 잇속셈을 숨겼다. 잠잠한 나를 헤집는 123이라는 숫자, 망령을 업고 해묵은 회군(回軍)이라니... 막심한 불효자의 후회로 사무친다. 45년 전에 이실직고했어야 맞는지, 항변하며 따지는 것이 정답인지도 판단하지 못..

한국인의 속멋

한국인의 속멋 한국에는 신미양요를 거쳐 외국인이 들어왔다. 그리고 기독교가 퍼지면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점차 알려졌다.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알 수 없는 미지였다. 쇄국정책과 유생들이 주름잡는 골수주의자라고 본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멋은 있었다. 번듯한 비싼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멋이다. 한국에는 부자유친이 있고 붕우유신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도리가 있고 서로 사랑하는 친밀감이 있다는 말이고, 벗 사이에도 도리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가족 간과 타인에게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는 말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산비탈이거나 거친 돌밭에서는 소를 쌍으로 멍에를 엮어 두렁을 꾸미지만, 평지와 지름진 논에서는 외멍에를 활..

피도 흐른다

피도 흐른다 흐르는 것은 액체와 기체에 해당하며, 고체는 딱딱하지 않은 경우에만 마치 물엿이나 꿀처럼 반고체이면 흐른다. 21대 총선을 맞아 후보자 본인의 피가 흐르는 일이 발생하였다. 어떤 폭행이나 상처를 입어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었고, 본인이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를 냈다. 그 피로 하얀 천에 글씨를 쓰려는 목적이었으니 혈서가 맞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 혈서가 빨간 피가 아니라 분홍빛을 넘어 옅은 빛이 선명했다. 그 사이에 후보자의 도우미가 다가갔고 계속하여 혈서를 썼다. 분명 의학용 소독제인 액체요오드 색이 확실하니 이어지는 가짜 쇼에 속을 사람도 없다. 다만 성원하며 동조하는 거짓말을 퍼트리는 피가 흐르는 사람은 빼고 말이다. 쓴 다음에 실토하고 끝냈다. 알고 보니 일본 침략자에 대한 투쟁을 단지..

전쟁이 남긴 두려움

전쟁이 남긴 두려움 6월 25일에 벌어진 한국전쟁은 한국민 간의 전쟁이다. 엄밀히 말하면 전쟁은 국가 간 분쟁과 공식 전투를 의미한다. 한국전쟁은 한국 국민들 간의 전쟁이라고 말하지만 따져보면 한국 국내분쟁이라고 본다. 전쟁을 떠나 일단 휴전 협상을 조인하여 지금도 인정하는 휴전 상태다. 넓은 의미로는 아직도 전쟁 중에 속한다. 휴전도 전투에 개입한 타국에서 주관하였다. 휴전이 되자 부상자들이 속출하였다. 부상자가 치료를 받았지만 장애로 부자유스러우며 생업에 종사하기 어렵다. 정부에서도 마음은 있지만 사망자와 부상자를 위한 보상 혹은 대우가 내세울 것이 없는, 불쌍한 나라였다. 어쨌든 전쟁 후유증이다. 그 때 내가 집에 있었고, 부모님은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위해서 밖으로 돌았다. 집에 혼자 있으며 심심하..

작가와 정치가는 어떻게 다른가

작가와 정치가는 어떻게 다른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까?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노인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누구든지 누구에게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좋지 않다며 타이르는 것과 핀잔을 주고 나무라는 것이 주 내용일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좋은 점을 지적하여 칭찬하거나 사실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격려하고 배려하는 말로만 타령하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작가는 어떤가? 가르치고 나무라는 것이 작가의 의무와 사명감이라고 생각한다. 시류를 탓하지 않고 시점을 즉각 판단하면서도 한 발 늦게 발동을 거는 것이 작가 감각이다. 일반이 즉 모든 지성과 국민이 하는 것을 보면서, 아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뼈저리게 느껴야 마음이 뭉치고 일어..

입영 통지서가 두 장 날아왔다

입영 통지서가 두 장 날아왔다 우리나라는 분단 상황을 맞아 두 개로 나뉘었다는 뜻이고, 아직 전쟁 중이라서 통일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국민은 누구든지 군대에 가야할 형편이었다. 전쟁이라면 신체가 건강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준다. 지식이나 부와 권력을 떠나 ‘체력이 국력’이라는 조건에 따르게 된다. 내가 군에 입대한 날짜는 1977년 6월 25일이었다. 뼈아픈 6·25 전쟁이 일어난 날짜에 입대하였으니 감회가 새롭다. 내가 받은 입영 통지서는 대략 열흘 전 이었다. 통지서를 수령한 날짜는 명확하지 않지만, 군에 가면 해결될 터이니 그 날짜를 따질 필요는 없다. 그래서 ‘입영 전야’라는 가요가 있듯이 축하해주고, 보내지 않고 싶어서 슬픈 마음을 담은 노래에 따라 송별식도 했다. 그런데 날짜가 다가오더니..